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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넷플릭스 영화 [키싱부스], 조이킹 제이콥 엘로디 조엘 코트니가 부르는 사랑과 우정사이

키싱부스 포스터

키싱 부스는 천방지축 좌충우돌 엘의 관점에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하이틴 성장 로코(이런 장르명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무비다.

 

엘에게는 절친이 있다. 절친인 어머니에게서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리. 두 어머니의 유산을 이어받아 엘과 리는 절친으로 쌍둥이처럼 성장한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영화는 YES라는 답을 내고, 그 답의 배경을 깔아 둔 셈이다. 갓난아기 때부터 쌍둥이처럼 자란다면 남자와 여자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전제는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한날한시에 태어나 쌍둥이처럼 자라는 남녀는 없을 것이기에. 하지만 영화적 설정 버프로 엘과 리는 정말 동성 친구처럼 격 없이 지낸다.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스킨십도 잦고 심지어 가족이나 형제들의 스킨십보다 더 자연스럽다.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절친으로 여기는 것이다.

 

엘과 리의 이 특별한 관계는 서로의 삶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그만큼 중요하다. 스무 개에 달하는 절친 규칙을 만들어진 것도 그만큼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이고, 이 관계가 깨지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규칙들은 서로의 프라이버시와 삶을 구속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바로

"룰 넘버 9, 절친의 가족은 절대로 넘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금지된 것을 욕망하기 마련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창조주가 그것을 금기시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금지할 때, 금지된 대상은 더욱 특별해져서 탐욕과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창조주가 선악과를 금지하지 않았다면 아담은 이브와 알콩달콩 연애하느라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리의 형 노아가 인물은 인물이다. 봉두난발이 유일한 흠이지만 잘생긴 얼굴에 엄청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아가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엘의 주변에는 외모와 피지컬을 가진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절친 룰 넘버 나인 때문에 노아는 유일한 대상이 되고, 엘은 노아의 존재에 더욱 끌린다. 이처럼 사람은 유일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게 끌리며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상대에게서 유일한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할 때, 상대에게 유일한 무언가를 주지 못할 때, 사랑은 식는다. 노아가 엘을 사랑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노아는 주변에 자기 좋다는 여자들이 줄을 섰다. 그런데 엘은 그 줄에 서지 않는다.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간다. 처음에는 동생의 시끄러운 소꿉놀이 친구였던 엘이 여자로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 노아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반하지 않은 유일한 여자가 너야"

규칙 9번 금기를 깨고 엘은 노아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규칙을 깬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리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또 다른 룰 때문에 리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 규칙은 6번 "절친에게 말하지 못할 말이 생기면 하면 안 된다"였다. 사랑과 우정, 규칙과 진실 사이에서 엘은 갈등한다.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난다. 엘의 이중생활도 오래가지 못한다. 리게 엘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자신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느끼는 리의 기류를 또 엘이 느끼면서 둘 사이는 급격이 어색해진다. 그러다 결국 엘과 노아가 키스하는 장면들을 들키게 되고, 리는 엘에게 극도의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 무엇이 리를 그토록 화나게 했을까? 리의 대사가 모든 걸 말해준다.

"내 인생에서 형은 원하는 걸 다 얻었어. 형이 내게서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게 엘 너였어. 이제 너도 가졌네."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리는 엘을 독립적인 존재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유일한 소유물로 여기고 있다. 엘이 규칙을 깬 것보다 자기 것을 빼앗겼단 사실, 그것도 평소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형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 리를 그토록 화나게 하는 것이다. 이 대사는 몸은 형처럼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미성숙한 리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엘은 리에게 사과를 하고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생각 해난다. 룰 넘버 7. "절친에게 아무리 화가 나도 아이스크림을 주면 용서해야 한다." 하지만 리는 엘이 준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유아적인 행동.

 

엘은 리와 노아 사이에서 힘든 시간을 겪는다. 노아를 사랑하지만 리에게 상처 줄 수는 없고, 리를 애정 하지만 노아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을 수도 없다. 사랑은 종이를 반으로 접듯이 접을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니까. 2주의 시간이 지나고 오락실에서 리와 화해를 하지만, 엘은 여전히 외로움을 느낀다. 리와 화해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노아와 사랑에 빠지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셋은 결국 졸업장 파티에서 다시 만난다. 축제 때 흥행한 키싱 부스를 재현한 무대에 노아가 턱시도를 입고 등장해 엘에게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며 엘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한다. 그러나 엘은 여전히 리의 눈치를 본다. 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을 할 용기가 없다. 그렇게 자신의 욕망보다는 타인의 욕망을 우선한다.

 

졸업식 파티가 끝나고 며칠 사이로 이어진 생일 파티에서 엘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만 외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노아의 불 꺼진 방을 올려다보았을 때,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노아를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노아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엘은 그날 밤 보스턴으로 떠나는 노아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자 리를 찾는다. 그리고 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널 사랑해. 그리고 언제나 항상 너와 함께 할 거야. 그런데 절친이라고 해서 내가 누굴 사랑할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냐. "

 

엘의 이 대사는 절친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 해당된다. 자신이 누굴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거나, 타인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는 없다. 그건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권력이자 폭력이지,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친구, 연인뿐 아니라 부모라도 한 개인의 삶을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난다. 낳아주고 길러주었으니까 자기 바람대로 따라야 한다는 부모. 사랑해주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연인.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까 너도 그만큼 해야 한다고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친구나 지인 등 건강하지 못한 사회관계는 많다. 이러한 외부의 압력에 당당히 자기 욕망과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키싱 부스]의 엘처럼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는 선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면 결국 관계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를 깨닫고, 엘은 이렇게 선언한다.

 

"오빠를 사랑한단 말이야. 오빠를 원해. 그게 네게 상처가 된다면 미안해. 그리고 너한테 거짓말한 거 정말 미안해. 내가 틀렸어. 그런데 오빠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너에게 다시 거짓말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못 받아들이겠다면 넌 내 인생에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아."

 

엘의 말에 리는 자신이, 자기가 고집하는 절친 규칙이 엘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깨닫고, 엘을 위해 행동한다.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것. 이것이 참된 사랑이면, 이 장면은 리가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한 단계 성장하는 순간이다. 사랑과 우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엘과 리. 그리고 엘은 노아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궁금하면 재생!

 

[키싱 부스]는 이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세 청춘 엘, 리, 노아를 통해 우정과 사랑, 그리고 스스로를 알아가며 성장하는 과정을 코믹하면서도 아주 찐하게 담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비중은 적지만 존재감은 남달랐던 엘의 아버지가 담긴 대사가 오랫동안 귀에 맴돌았다.

 

"엘이 선택해야지. 자기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엘이 알아가야지."

 

우리 모두 그렇다.